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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the light/100 cities

001. 마드리드, 처음 만나는 자유

 

Mi ciudad, Madrid

얼마나 살아봐야 이 도시를 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마드릳은 내가 처음으로 혼자 살아 본 도시이자, 한국 밖에서 처음으로 집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곳이다. 

내 몸집만한 이민 가방과 수트 케이스를 질질 끌고서 처음 바라하스 공항에 내리던 날이 생각난다. 아직 밤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이었다. 직전 해 유럽 여행 2달 다녔다고 모든 걸 다 안다고 착각했지만 비행기 표도 제대로 끊을 줄 몰랐던 때여서 편도를 끊고 런던 공항을 경유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나 나이보다 성숙해보이는 외모였는데 입국 심사를 받으며 '쟤 혼자 다니긴 너무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들어서 굉장히 의아했다. 하지만 실제로도 정말 어렸어서,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가는 내내, 제대로 도착할까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땐 스마트폰이고 뭐고 없던 때라 의지할 것은 성선설 뿐이었다. 

이젠 어제 일도 가물가물한데 이 때의 기억만은 또렷하다. 어찌어찌 체크인을 하고 열쇠를 받아 방에 들어섰던 순간. 가구밖에 없는 텅 빈 공간에 이불조차 없어서 낙담했었다. 어째서 이걸 한국에서부터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과 함께. 

Universidad Autonoma de Madrid Erasmos II

그 후 10개월 동안 나는 마드리드가 너무 좋았고, 너무 싫었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에서 여행자에게 가장 좋은 도시는 아닐 것이다. 미술을 정말 좋아하거나, 레알 마드리드 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이라면 몰라도. 바르셀로나처럼 이색적이고 화려하지도 않고, 남부의 세비야나 그라나다처럼 멋진 풍경이나 여유로운 삶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굉장히 보수적이고 겨울에는 사실 춥고 비도 많이 오는 우기가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오오 저 사람은 오오 모드리치

왜 마드리드였을까?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지만 미국을 가려면 토플과 학점 준비를 더 해야했고, 유럽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과 맞물려 스페인을 생각했었다. 언젠가 배워보고 싶던 스페인어와 즉흥성이 없었던 내 성격에 변화를 주고 싶었고. 또 우물쭈물 거리던 쫄보 같던 내게 엄마는 완벽히 준비되는 때를 기다리려면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막상 마드리드에 도착하니 영어 수업은 하나도 없고 스페인어로만 들어야 했던 건 인생 제 1의 시련이었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성적시스템은 pass or fail일 뿐이고 fail한다고 해도 한국 와서 학점 채우면 되는 것을.

컴퓨터로 구글에서 지도를 보고 어디 갈 지 적어 감으로 다니던 시절이었지만 여기저기 잘도 쏘다니며 내가 대체 어떤 모양으로 생긴 사람인지 알아봤던 최초의 시간이었지 않았을까. 내가 사람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된 시간이었기도 하고. 

마드리드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던 날, 다시 바라하스 공항이었다. 멕시코에서 일을 하러 와 있는 아빠를 보러 왔다 다시 집으로 가는 가족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빌어 나도 같이 슬퍼했다. 정말 이젠 마드리드고 스페인이고 지겹고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고 슬프니까. 그 이후 서울에서 나는 얼마나 마드리드를 그리워 했는가. (그래서 앞으로 시카고를 얼마나 그리워할지 벌써 슬픈 마음이다. 갬성...) 

 

다시, 마드리드

그리고 8년 만에 마드리드를 다시 찾았었다. 유일한 백화점 체인인 엘꼬르떼 잉글레스 마트의 진열마저 그대로여서 슬프기도 했지만 내가 알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안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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