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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the light

노르웨이, 12월 말의 트롬소: 극야를 나는 법

Tromso

2014 Dec 27 - 29

 

Midnight sun, Polar night

1년동안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는 23.4도만큼 기울어져 있다. (이 기울기는 약 41,000년을 주기로 또 변한다고 한다.) 

 

           Copyright ⓒ Audun Igesund, NPI

 

그래서 위 그림과 같이 66.33도 이상의 극지방에서는 5월부터 8월 중순까지는 항상 해를 볼 수 있고, 11월말부터 1월까지는 항상 해를 볼 수 없게 되는데, 각각을 Midnight Sun(백야), Polar Night(극야)이라고 한다. 사실 오로라(Aurora Borealis)가 생기게 되는 이유도 이렇게 지구가 기울어져있기 때문이다. 극야 때 햇빛을 직접적으로 받지는 않아도 해의 (정기 아닌) 전기를 품은 입자들이 극지방 근처에 흩어지고 자기장이 그 입자들을 끌어 당겨서 공기와 닿게 되면서 그런 빛의 움직임을 자아내는 것이다.

 

내가 과학을 좋아했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지구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바로 보여주기도 하고 현상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백야/극야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칠흑같은 어둠이 길게 이어지는 극야에 대해서는 더욱 실제로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이, 트롬소는 한겨울에 가야만 했다.

 

 

 

Tromso의 극야

12월 27일, 오후 2시쯤 트롬소에 도착했는데, 온 세상이 파란 어둠이 내린 느낌이긴 했지만 아무것도 안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초저녁과 한밤 사이 정도의 배경 속에 흩어지는 눈발을 뚫고 숙소에 도착했고 한동안 오들오들 떨었다. (숙소 주인을 기다린다고 한참을 바깥에 서성였어서 더욱!) 어느새 밤은 더욱 짙어져 있었고, 이렇게 하루종일 밤이 지속되는 삶은 어떨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트롬소는 그래도 어슴프레 해가 뜨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는 까만 밤만 이어질 줄 알았는데 북극에도 낮과 밤은 존재하는 것이었을까.

 

▼ 오전 11시 숙소 앞을 나서던 때

 

 

그러니까, 아무리 극야라고 해도 (트롬소 정도의 북쪽 도시를 기준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는 수준의 빛이 존재하는 것이다. 낮과 밤이 존재한다기보단 초저녁과 밤이 존재하는 것과 같지만 어쨌든 이렇게 빛이 살아 있는 때가 있다. 물론 오후 4시가 되기전에 이미 완전한 밤이 찾아오긴하지만.

 

 

▼ Fjellheisen(케이블카)를 타고 Storsteinen(420m 정도의 산으로 트롬소 전경을 볼 수 있다.)에 올라 바라 본 도시의 모습

    각각 오후 1시 58분, 오후 4시 15분. 

    2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새까만 밤이 되었다. 

 

 

바깥이 그래도 밝아지기에 아침이 오려나보다 하고, 계속 밤이 이어진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환해지는 것은 아닐까했는데, 그렇게까지 창창한 빛은 없었다. 그저 그래도 눈으로 무언가 볼 수 있는 정도의 시야여서 신기할 뿐, 그냥 거기까지.

그리고 아주 순식간에 밤이 되었다.

 

빛은 더 어두워지기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갑작스러운 밤.

 

매일 새벽 잠이 덜 깬 상태로 몸보다 더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출근행 지하철을 탈 때 가끔 무의식적으로 '북유럽 이민'을 검색하곤 했다. 이렇게 저렇게 알아보니 토종 문과생인데다가 앞으로도 별로 변함없을 예정인 내가 이민을 갈 수 있는 방법은 바이킹족의 후예인 누군가를 만나 결혼하는 수밖에 없더라고, 친구들에게 건넬 농담거리 하나 늘었을 뿐이지만, 직접 가 보니 일년의 몇 달 찾아오는 이 밤을 내가 견뎌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원래부터 불가능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 계절성 우울증.

병명마저도 슬픈 이 병은 북유럽에서 약 1,200만 명 정도가 앓고 있다는데 이건 마치 북유럽에선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래 너도 앓고 있니?'라고 할 수 있는 수준 아닐까? 나는 이미 겨울에 취약해서 이미 20대 초반부터 항상 겨울병의 아이콘이었는데 빛, 그래서 세라토닌 없이는 더욱 힘들 것 같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갈 뿐더러, 무엇을 할 필요가 없고, 하지 않음(무위 無爲)에 어떤 죄책감도 없을 것만 같은 이 곳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며칠 뿐일 것이고 밤낮이 있는 도시에서 자란 내가 오히려 더 불행해질 것만 같았다.

 

 

기대보다 밝은 Polar night 속에서 나는 혼자 외로웠을까?

벌써 4개월이 지나버려서인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가 북유럽에서 계속 살 수는 없겠다는 사실, 하지만 이렇게 계속되는 밤이 어찌됐든 그리워질 것이라는 것은 것은 그 때 이미 알았고 지금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