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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the light

베를린, 비오는 크리스마스

Rainy Christmas

2014 Dec 25

 

오후 다섯 시, 아무런 불빛도 없는 까만 도시를 걸어 마술피리를 보러갔다. 독일에 왔으니 독일어로 된 징슈필을 보고 싶기도 했고, 밤의 여왕 아리아를 듣고 싶었다. 실용적인 나라다워서 그런지, 더 화려한 뮤닉이 아니라 베를린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마치 동네 공연에 온 듯 편한 차림이었다. 이제 막 도착해서 시차적응도 안 된 채로 공연을 보러 왔으니 그런 편한 분위기가 좋았다. 아, 그리고 공연을 기다리던 중 독일에서 음악 유학을 하는 듯한 한국인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도 재밌었고. 

 

다음 날 일어나보니 간밤에 비가 내렸다. 땅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가뜩이나 회색빛 짙던 도시는 스산한 빛을 더했다. 비도 오고, 크리스마스라 연 곳도 많지 않을 땐, 역시 미술관이다.

게말데갤러리는 13-18세기 유럽 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뒤러, 한스홀바인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고 카라바조 베르메르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포츠다머 광장에서 도보로 10분 정도고 베를린필하모니 옆에 위치.

추위에 떨며 포츠다머 스트라세를 걷다 소니센터로 들어갔다.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중 하나였는데 어딘가에 이 자산에 투자했다는 게 적혀있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찾아 걸었다.

축구장 3개만한 면적에 비석같은 사각 기둥들을 빼곡히도 채워놓았다. 약 3백만명의 유대인 희생자 명단이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고 별다른 무언가는 없지만 규모만으도 압도당하는 듯 하다.

안에 들어가면 마치 미로 안에 있는 것 같은데 경사가 내려갔다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마치 감옥에 있는 느낌도 든다. 희생자들의 경험을 재현하려 한 것 같기도 하고.

일각에서는 그 많은 희생자들 중 유대인 희생자만 추모하는 곳이냐고 하기도 한다지만 이렇게 도시 한 가운데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보여주는 것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대단한 일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바로 옆에 있었다. 

 

독일에 왔으니 크리스마스마켓에 들러 글뤼바인도 마시고 카라멜라이즈드 피칸도 먹어야지 하면서 들렀다. 사람들이 돌아다닐 수 없는 이 코비드 시대 크리스마스와 사뭇 다른 모습이 좀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