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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the light/europe

베를린, 현대 도시를 여행하는 이유

Berlin

2014 Dec 25

 

 

 

현대화는 세계 곳곳에 비슷한 도시들을 만들어냈다. 근대화 이전부터 원래 도시였던 곳도 있고 아니었던 곳도 있지만 현대 도시들은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표지판이나 간판 등에서 보이는 언어, 그리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인구학적 구성이 조금씩 바뀔 뿐 몇 시간이면 이전에 들렀던 다른 도시와 그리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과 함께 점점 좁아지는 세계 안에서 이런 현대화는 인간이 낯선 도시에 봉착하여 적응해야하는 시간을 현저히 줄였다.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 베를린에 도착하더라도, 서울의 낯선 곳을 방문했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유럽 도시들이 현대화되는 도시 속에서 아무리 자신들 고유의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방안을 택했다고 해도, 개별 도시들의 특색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베를린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도시의 98%가 파괴되었다고 하니, 아무리 원형으로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더라도 현대화라는 변수가 더 들어갈 수 밖에 없었을테고, 박물관섬 주변을 제외하고는 처음이지만 아주 익숙한 도시를 방문한 것 같았다. 또 이미 유럽도시라면 꽤 많이 다녔던 터여서 더욱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런 낯섦에 대한 적응 시간이 짧다는 것은 새로운 도시에 대한 설렘 또한 뭉텅, 앗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미 익숙한 새로운 도시들은 여행할 이유가 없는 걸까?

베를린에서 생각한 이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우선 내가 사는 도시와 비슷한 점이 많은 또 다른 도시에서 타인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은 내 일상을 환기한다는 데 있었다. 그리 다를 것은 없지만 어쨌든 다른 곳에 와 있다는 여행자의 신분이 나와 비슷한 삶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게 하고 내 일상도 나름 괜찮은 일상이구나 하는 위안을 얻게 되는 것. 

또 내 경우에는 다양한 도시에서 이전과는 다른(특색은 지역, 장르일 수도 있고, 전시장/공연장일 수도 있으며, 가격적 이점이 있을 수도 있다) 전시/공연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도시가 여전히 매력적이다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도시여서 좋은 이런 점들 하나씩은 있겠지 싶다.

 

 

그래도 역시 일상이 너무 지겨워서 떠난 곳은 일상이 이어지는 곳과 조금이라도 더 다를 수록 여행지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이번 여행에선 눈으로 뒤덮인 북극의 트롬소가 가장 인상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다른 도시가 궁금하다. 물론 뉴욕이나 시카고처럼 엄청 큰 도시라면 더 매력적일 것 같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다를 것 같지만 별 것 없어서 내 삶도 별 것이구나 느껴지는 또 다른 도시를 여행할 것이다. 물론, 너무 길게는 말고, 하루 이틀이면 충분할 것 같지만 ㅎㅎ

 


 

2015년에 쓴 글인데 대도시에 시카고를 언급했다는 게 신기하다. 이 땐 내가 시카고에 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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